메뉴

성호사설 제2권 / 천지문(天地門) 제 64화 윤관비(尹瓘碑)

성호사설 제2권 / 천지문(天地門) 제 64화

 

윤관비(尹瓘碑)

 

[원문]

尹瓘碑在先春嶺豆滿江北七百里其所勒書雖為胡人剝去而舊跡尚猶未盡泯也瓘置六城設公嶮鎭自髙嶺鎭渡豆滿江至蘇下江濵有古基即先春嶺之東南白頭山之東北其拓界之逺如此今以豆滿為界者自金宗瑞始也頃年穆克登之来定界也未知奉命者能舉此為言如徐熈之扵蕭遜寕耶瓘使兵馬鈐轄林彦記其事云其地東至于大海西北介于蓋馬山南接于長㝎二州山川秀麗土地膏腴本髙勾麗之所有其古碑遺迹尚有存云云今不知此地㝎在何地而要是豆滿以外也然則不獨尹碑尹之前已有髙勾麗之所勒銘耳

ⓒ 성호기념관

 

[해설문]

윤관의 비는 선춘령(先春嶺)에 있으니 두만강(豆滿江) 북쪽으로 7백 리가 되는 곳이다. 그 비에 새긴 글은 비록 호인(胡人)이 긁어버리기는 했으나 옛날 흔적이 아직도 다 없어지지는 않았다.

윤관이 육성(六城)을 설치하고 공험진(公嶮鎭)을 개설하였는데, 고령진(高嶺鎭)으로부터 두만강을 건너 소하강(蘇下江) 가에 이르면 옛 터전이 그대로 있으니 곧 선춘령의 동남쪽이요 백두산의 동북쪽이다. 그는 이만치 국경을 멀리 개척해 놓았는데, 지금 두만강으로 경계를 정한 것은 김종서(金宗瑞)로부터 시작되었다.

연전에 목극등(穆克登)이 와서 경계를 정할 적에 우리의 대표로 나갔던 사람이 윤관의 비를 가지고 옛날에 서희(徐熙)가 소손녕(蕭遜寧)에게 항쟁하듯이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윤관이 병사령할(兵使鈴轄)인 임언(林彦)으로 하여금 그때의 일을 기록하되, “이 땅은 동으로 대해(大海)에까지 연접했고, 서북으로 개마산(蓋馬山)까지 들어갔으며, 남으로 장주(長州)와 정주(定州) 두 고을과 연접했으니 산천도 수려하고 토지도 비옥하다.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땅으로 고비(古碑)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하였다.

지금 그곳이 바로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두만강 밖에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 윤관의 비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윤관 전에 벌써 고구려에서 새겨 세운 비가 있었던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순 정소문 홍찬유 (공역) | 1977

 

우리 참좋은뉴스신문사에서는 안산의 대표적인 성리학의 대가인 성호 이익 선생에 대한 유고인 성호사설을 연재하기로 결정하고 한국고전번역원과 합의하에 성호사설 제1권부터 원문은 물론

번역문을 편집하여 게재하기로 하였다.

 

 

編輯: 海東 뿌리文化 硏究院長

脫凡 최영길


정치

더보기
‘안산시민 100인의 지지자와 함께하는 조국혁신당 김병철 출판기념회’, 성료
[참좋은뉴스= 김태형 기자] 조국혁신당 김병철 위원이 안산 지역 지지자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 출판기념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지난 12월 1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안산지지자 100인과 함께하는 김병철 출판기념회’라는 타이틀로 진행됐다. 현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안산 지역 지지자 100여 명이 참석해 객석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많은 분들이 자리를 지켰다. 무슨 사연으로 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궁금해 책을 읽었다.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김병철 위원이 달리 보였다. 공동 저자이기도 한 지지자들의 몇 가지 사연을 소개한다. 강선윤 시민 “30여 년 전,제가 원곡동 라성빌라에서 통장을 맡아 살던 때였습니다. 상가 1층에 ‘치킨’ 간판을 내건 젊은 사장님이 들어왔습니다. 저녁이면 상가 복도에 치킨 튀기는 고소한 냄새가 퍼지고, 가게 문턱엔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그가 가게를 더 이상 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리할 틈도 없이 바쁜 상황이었고, 가게는 빈 채로 남을 판 이었습니다. 그때 김병철 님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제게 "믿고 맡긴 다"는 뜻을

경제

더보기

문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