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한 TV 프로그램에서 다룬 ‘정인이 사건’이 화제다.
생후 16개월에 불과한 아기가 자신을 입양한 부모의 학대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방송 이후 양부모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고, 이런 여론에 맞춰 국회에서는 자녀징계권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과, 학대신고가 있을 경우 즉각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는 아동학대범죄 처벌특례법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아동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너무 관대하게 인정해 줌으로써, 훈육이라는 이름 하에 가혹한 체벌이 가해진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정인이 사건’이 촉발한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에게 있어 이번 사건은 한편으로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다. 정인이 양모의 양육태도에 대한 지인들의 증언을 보면서, 필자의 양육태도를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의 장애를 알고 한없이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던 때가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붙들고 함께 죽자며 울부짖던 상황이 있었다. 그리고 하지 말라고 수십 번 말을 해도 계속 같은 짓을 하는 아이에게, 화가 폭발해 소리를 지른 적도 많았다. 전문가들은 수십 번으로 안 되면 수백, 수천 번을 가르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다. 이제 10살이 된 아이에게 지금도 나는 하루에도 한두 번은 소리를 친다. 자기의 작은 규칙이 깨져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아이를 달래다 적당히 하라며 등짝 스매싱을 날리기도 한다. 이도 저도 하기 싫다는 아이에게 “안 하면 혼난다!”며 협박을 일삼기도 한다. 집밖에서 보는 눈이 있다고 해도,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신체적, 언어적, 정서적 폭력...
나는 이 모든 폭력을 아이에게 가하고 있는가? 부정할 수는 없겠다. 필자 역시 이 모든 행위의 명분은 안타깝게도(?) 훈육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감정을 실어 아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책감에 고해성사를 하듯, 동료 장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그렇게 살아. 우리도 사람이잖아.” 이 한 마디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며 어쭙잖은 위안을 삼기도 한다.
실제로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 중에는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많다. 정확한 통계를 알지는 못하지만, 필자의 주변 상황을 보면 자폐성장애 부모들의 곤혹을 치르는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 같다. 이 경우 대부분은 아이의 돌발행동과 부모의 대응을 오해해서 생긴 상황들이다. 돌발행동의 강도가 세거나 위험할수록 엄마의 대응도 함께 강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 대응에 조금이라도 감정이 실리면 “대응”과 “학대”의 경계가 애매해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대응을 하루에도 몇 번씩, 1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을 해오고 있다면? 그리고 그 상대가 내 자식이라면? 나의 몸과 감정의 힘듦을 배제한 채, 남처럼 담담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년에 필자는 날마다 치르는 아들과의 싸움에 지쳐 있었다. 혼이 나는 상황에서도 아들은 엄마의 감정을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엄마 속을 박박 긁으며 말대답을 했다. 어느 날 아이의 치료사와 상담을 하다가, “선생님, 저는 요즘 아들이 정말로 꼴보기 싫어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때 치료사의 대답은, “어머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미운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순간 웃음이 나면서 마음 속 응어리가 풀렸다. 그리고 아이를 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런 이야기가 감정을 실어 아이를 혼내고, 체벌까지 했던 필자의 행동을 옹호하기 위함은 아니다. 이런 행동들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발달장애 부모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을 조금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장애 부모들이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을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장애부모에게 있어 일상은 그 자체가 교육이고 연습이다. 그렇기에 조급하고,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한다. 부모도 사람인 이상, 이 모든 감정을 배제할 수는 없다. 답답함에 혼을 내고, 서러움과 분노와 자책이 뒤섞여 혼란과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온다. 아이를 가르치는 방식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학대로 여기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우리도 내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니까 말이다.
‘모두 다 꽃이야’는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꽃이 어디에서 어떻게 피어도 모두 다 꽃이듯, 우리 아이들과 엄마들도 모두 하나하나의 소중한 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