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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석(素石) 이철승 선생 제6주기 추도식 열려

 

[참좋은뉴스= 최영길 기자]

 

지난 2월 25일 보라매공원의 반탁반공순국학생충혼탑 아래에서 사) 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 사) 한국학생운동기념사업회(화장 이용택), 사)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회, 사)대한민국건국운동자유족회(회장 양금선), TK 자유산악회(회장 허제대외3인) 이상 5개 단체의 임원과 회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석 이철승 선생 제6주기 추도식이 코로나19 방역을 마치고 조촐하게 진행됐다.

 

이용택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제는 70여 년이 넘는 한국 정치사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시점이다. 지난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정세와 올해로 73년을 맞은 한국 정치사는 영욕의 현장들이었다.”며 “정치적 사건, 여야 정치 비사, 대통령의 이야기 등 오욕이 있는가 하면 소중한 역사의 ‘한국 정치사’를 새로 읽고 새로 써야만 한다. 1945년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고, 한반도 정세가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해가 바뀌어 해방 2년 차가 되었을 즈음. 1946년 신년,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한 7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국민총동원위원회가 구체적인 반탁운동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리곤 “백범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한 우익인사들이 모스크바 3상 회의에 이어 미·소 공동위원회를 통해 남·북한을 신탁 통치하려는데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만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한반도 정세였다.”며 “이때 학생 신분으로 분연히 일어선 분이 바로 소석 이철승 선생이었다. 우리는 그분의 뜻을 이어 두 동강이 난 우리 조국이 하루빨리 통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서 양금선 회장은 소석 이철승 선생을 소개했다.

“1946년 1월 2일 오후 2시 서울 한청빌딩에서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발기로 서울 시내 11개 남녀 전문학교 대표들이 반탁 전국학생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위원장에는 서울 출신인 이철승(李哲承, 1922년 5월 15일 ~ 2016년 2월 27일)이 맡고 민족자결. 신탁통치반대, 자주독립 등 3개 강령을 만들었다.”며 “이철승 등은 전국적인 학생운동을 강력히 전개했다. 이철승은 이를 계기로 공식적인 학생운동가 1호가 됐다. 그는 이어 같은 해 7월 전국학생 총연맹을 결성하였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에게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장면, 윤보선 등과 함께 제3공화국·제4공화국 시절 박정희의 경쟁자로 알려졌다. 박정희 이후 잠재적인 대안자의 한사람으로 꼽힌 민주당 신파 출신이었다. 그의 본관은 충남 연기군 전의(全義)다. 서울에서 태어나 전북 완주와 전주에서 성장했다.”며 “일제 후반에는 전주 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징집반대 등으로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큰아버지 이석주의 권고로 인촌 김성수 선생을 찾아가 보성전문학교로 전학, 교내 반탁 학생이 됐다. 강제 징집 거부로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다가 1944년 1월 학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끌려갔다. 그 뒤 오사카의 병참 부대에 배속, 1945년 8월 자살특공대로 차 출당했다가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일본군에서 탈출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미군정 때는 우익 학생운동과 신탁통치 반대 시위 당시 김구, 김성수 등을 도와 학생 반탁 집회를 주관했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제헌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친일 경찰 채용 등을 반대하기도 했다. 6·25 전쟁 중에는 학생들을 모아 전국학련 학도의용군을 편성, 낙동강 전선과 대구에서 참전했다.”며 “그의 정의감은 1951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민방위군들 병사들에게 전달해야 할 50여억 환의 자금과 재물을 착복한 것을 국회에서 폭로하게 했다.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6.25 전쟁 중에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사건이다. 한국에 파견된 외신들이 톱으로 다루고, 유엔 등이 한국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이승만 당시 대통령을 압박하는 사태다. 이를 계기로 이승만의 제1공화국 기간 중 자유당에 반대하여 야당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고 얘기했다.

 

이어서 “초대 제헌의원 선거에는 낙선했으나, 3대, 4대, 5대, 8대, 9대, 10대,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7선 의원이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의 회유를 거부하고 반 군정 운동을 했다. 1970년대 김영삼, 김대중, 윤보선, 유진산 등과 신민당의 당권을 놓고 경쟁 관계에 있었다.”며 “이철승은 중도화합론을 주장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정계 은퇴, 우익 시민사회단체를 지도했다. 우리는 소석 선생의 6주기 추도식을 참가하는 이 자리에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위한 자주독립을 위하여 정진해 나갈 것을 맹세하고 실행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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