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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의 여유> 맨 처음 손자

 

이런 날을 두고 인생살이가 살만하다 하나보다.

 

수개월을 마음속으로 마중했던 귀한 손자가 마침내 펄펄 내리는 백설처럼 신의 축복 속에 탄생했다. 가족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손자는 기쁨과 행복으로 아낌없이 보답한다.

 

지난 1월2일은 우리부부 39주년 결혼기념일이다.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아들 내외는 우리결혼기념을 축하하기 위해 자동차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려왔다. 나는 “아니 이제나 저제나 출산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 낳을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 왔어?”하며 며느리에게 말했다. 며느리는 “아직 진통이 심하지 않네요, 내일도 지켜보다가 산통이 없으면 병원에 가야겠어요,” 이리하여 딸 그리고 아들 내외와 케이크를 자르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며 화기애애한 기념일을 보냈다.

 

다음 날, 며느리는 산통은 없고 태아는 자꾸 커가는 느낌이라며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평소에 찾지 않던 하나님을 불렀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제발 산모와 태아 고통을 줄여주시고 건강하게 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며느리는 24시간동안 자연분만을 유도했으나 제왕절개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이다. “남녀 차별 없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산아제한이 시행된 시기다. 사십년이 흐른 지금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게 억제하는 시대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시대로 세상은 완전 탈바꿈했다.

 

며느리가 아이를 낳고 보니 나도 자식 낳을 때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첫 딸아이 임신말기에 임신중독에 걸려 의사선생님이 큰 병원에 가서 출산하라고 당부했다. 출산 전날 월동김장을 해서일까. 배가 몹시 아파 세상모르고 자는 남편을 깨워 다니던 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하지만 꼭두새벽이고 시골병원이라 간호사만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날이 밝자 의사선생님은 나를 119차에 태워 대형병원으로 이송시킨다. 호송차량에서 나를 지켜보던 시어머니와 내 친구는 내가 잘못 될까봐 안절부절 이었다.

 

우리는 손자 출산소식을 듣고도 사진으로만 만나야 했다. 병원은 철저히 봉쇄되어 가족도 출입을 못한다. 코로나로 인해 며느리는 첫 출산기억을 쉽게는 잊지 못할 것이다. 며느리는 가족 톡에 갓난아이를 수 없이 찍어 올린다. 사실 엄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들이다. ‘그래, 예쁘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운 아들, 얼마든지 찍어 올리렴, 사실 할머니도 맨 처음 손자가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우리 가족은 손자가 태어난 후 하루가 멀다 하고 톡으로 소통한다. 손자 때문에 가족 간의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 하루는 며느리가 “어머니, 병원 신생아중에 우리 아들이 제일 똘똘하고 예쁜 것 같아요,” 한다. “아 그래? 맞아, 우리 손자는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특출 나더라, 인정한다.”라며 힘을 바짝 실어줬다.

 

마침내 사진으로만 봐왔던 손자와 극적인 상봉이 있는 날이다. 손자를 낳느라 애쓴 며느리에게 소고기 미역국과 소족 탕 그리고 맵지 않은 나물들을 해 가지고 갔다. 나는 앙증맞은 손자를 보는 순간 단숨에 들쳐 안고 싶었지만 안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갓난아이를 두 명이나 키웠던 저력 있는 엄마가 손자를 안으려니 겁부터 난다. 첫날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가 한 주 한주 지나면서 안정감이 들어 편안하게 안을 수가 있게 되었다.

 

탄생 며칠 후. 손자는 이름 석 자를 받았다. 아들 내외는 이름이 인생을 좌우한다며 작명가에게 이름을 부탁했단다. 톡에 한자로 뜻풀이한 이름 네 가지를 올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선택하란다. 사람이 살면서 선택하는 과정들이 참 많다. 더더군다나 손자이름인데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부는 의견이 잘 맞지 않아 로또란다. 그런데 로또가 맞은 셈이다. 모처럼 손자이름 선택하는 데는 일치했다.

 

아들 내외는 밤과 낮을 가리지 못하는 시(是)준(俊)이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 피곤하다며 하소연한다. “그래, 엄마 아빠 되는 일이 쉽지가 않단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은공을 안다고 하지 않더냐?” 시준이가 밤이 되면 자지 않고 칭얼대다가 새벽3시나 되어야 잔단다. 어찌되었든 부모 손 빌리지 않고 스스로 키워나가는 아들 내외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나는 아들이 피곤하다며 육아에 등한시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다. 그러나 아들은 처자식을 끔찍이 여긴다. 지친 몸이지만 자기를 똑 닮은 아들을 보면 힘이 솟는 것 같다. 우유 먹이고 안아주고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게다가 밤늦게는 곤잠자라고 씻겨주기까지 한다. 35년 동안 엄마하고 살 때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던 아들이 완전반전이다. 주방을 떠나지 못하는 주부로도 변신했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아들이 어쩌면 현명하다 싶다.

 

손자는 탄생 2주일부터 눈도 마주치고 귀도 트인 듯 반응을 한다. 오물거리는 입은 곧 옹알이 할 것 같은 모습이다. 탄생 40일이 되던 날. 유모차에 태운 사진이 올라와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추위에 시준이 데리고 외출한 거야?” 했더니 “아니요, 폼만 잡고 찍은 거예요,” 엄마 아빠는 하루빨리 외출하고 싶은 마음인가보다.

 

어느새 50일이다. 목가누기· 배 밀기· 등 영아교육을 시키는 영상이 올라왔다. 나는 노파심에 “너무 무리하게 시키지 마라.” 때가 되면 알아서 목도 가누고· 기고· 걷고· 말도 할 텐데, 신생아에게 교육이라니 참 유난스럽다. 앞서가도 너무 앞서간다. 하지만 동료 엄마들도 다 시킨다니 할 말은 없다. 내 핸드폰 갤러리에는 손자사진으로 도배를 했다. 프로필 사진도 날마다 바꾼다. 손자사진 올린 지인들이 부럽기만 했었는데 이제야 소원성취 한 기분이다. 자고로 집안에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 아이로 인해 변화가 오고 윤택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된다.

[참좋은뉴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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