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한잔의 여유>
다시 봄
수필가 구순옥
생명력을 가장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 화가가 신의 한수 봄이다. 해마다 묵묵히 재현되어도 그때마다 아쉽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마른나무에 촉촉이 물이 올라 잎이 돋아나고 만삭이 된 꽃 몽우리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순서 없이 피어낸다.
봄은 대자연만 꿈틀 거리는 것은 아니다. 빈 들판 농부들의 일손도 분주하다. 땅을 갈아엎어 밑거름을 주고 농작물을 심으며 한해 농사는 시작된다. 바삐 움직이는 이웃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비록 소일거리로 짓는 텃밭이지만 덩달아 몸도 마음도 들뜬다.
어떤 농부는 ‘봄이 오면 꽃놀이 보다 농사일부터 생각나요, 그렇다. 봄이 왔으니 농부들은 농사준비 과정에 들어간다. 초보농부인 나는 모종을 종묘상에서 사다 심기도 하지만 올해는 재미삼아 시험 삼아 씨앗 심는 포토에 각종 씨앗을 심어보았다. 튼튼한 모종으로 길러내 비닐멀칭 한 밭에 이식하려 한다.
우리는 2년전 만 해도 자동차로 한 시간 걸리는 안산시내에서 농사지으러 다녔다. 주말에만 다녀야 하니 처삼촌 벌초하듯 대충 지을 수밖에 없다. 잡초와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언제나 완패다. 이제는 집 앞 뒤에 텃밭이 있으니 그 어느 농부 못지않게 지어볼 생각이다.
성인이 되어서부터 자동차운전을 해온 남편은 경운기 운전은 겁을 낸다. 이웃집에서 경운기를 빌려 왔는데 작동을 모른다. 물어물어 습득하더니 역시 이내 능숙하게 잘한다. “여보, 앞으로는 남의 손 빌리지 않아도 밭갈이 걱정 없겠소, 이젠 참 농사꾼이 되었으니 관리기도 하나 사자고요,”
이미 비닐멀칭 한 뒷밭에는 조기작물인 감자와 강낭콩을 심었다. 감자는 성질이 급하기도 하다. 빨리 시집 보내달라며 뿔이나 있었다. 다산하기를 기원하면서 서둘러 살아갈 터전으로 보내줬다. 감자의 생명력은 비닐을 뚫어버릴 기세다. 목이 부러질세라 조심스레 매만져주었다. 그런데 감자가 ‘땡볕에 숨이 턱까지 차올라 호흡이 곤란했는데, 고맙습니다.’라며 말하는 듯했다.
작년 무더운 어느 날 아랫집아우는 강낭콩을 수확하고 있었다. “오모나 하얀 강낭콩이네? 이런 강낭콩은 처음 본다, 나도 심어보고 싶다, 씨 좀 줄 수 있을까?” 라며 아우한테 말했다. 아우는 “이 강낭콩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들었어요, 심을 만큼 따가세요,” 한다. 이 하얀 강낭콩은 일반 강낭콩과 달랐다. 길쭉하고 날씬하며 크기도 작았다. 아마도 콩의 모양을 보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가족들 건강밥상에 올릴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뿌듯하다.
며칠 후 강낭콩은 싹이 트고 있었다. 그런데 씨가 심은 대로 고르게 나면 좋은데 이 빠진 듯 드물게 올라왔다. 무슨 농작물이든 씨가 잘 서야 농사짓는 일이 쉽다. 이번에도 범인은 산비둘기일까?, 까치일까? 아니면 세상에 나올까말까 망설이고 있는 걸까, 아무튼 농사짓기에서 씨앗이 고르게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는 TS 엘리엇 황무지의 시 서두이다. 봄은 겨울을 잘 견뎌낸 결과물이다. 전쟁이 할퀴고 간 황무지에도·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어김없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코로나일상에도 다시 봄은 찾아들었다. 지구가 존재하는 한 봄은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