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은 일자리의 형태를 바꾸고, 시민의식은 더욱 다양해졌으며, 공정에 대한 감수성은 과거보다 훨씬 예민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진보는 사회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다양한 요구에 공감하며 대응할 때에만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진보는 여전히 내부 논리와 관성에 갇혀 있고, 특히 노동운동의 방향 설정과 정책 대응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대표적인 노동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공기관 내부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정책 설계와 실행의 허점이 드러났다. 정부와 노조 모두,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노동계 내부의 분열을 초래했고, 2025년인 지금까지도 그 갈등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과제를 책임 있게 마무리하고, 노동자 간 연대를 회복하는 ‘공감의 진보’를 실현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현안 중 하나는 공공기관 자회사 문제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고용 불안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수의계약을 통한 안정적 운영이 보장되어야 하며, 『고용노동부고시 제2023-58호』 제3조를 삭제하여 3년마다 직무사무규정을 재검토하도록 한 절차를 폐지해야 한다. 모회사와의 지속적인 계약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자회사를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의 중소기업자 범위에 포함시켜 퇴직연금, 세제 혜택, 주거·휴가·예금 지원 등 실질적인 복지 제도가 자회사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공공기관 정규직과의 차별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정부의 역할 못지않게 노동계의 자기 혁신도 절실하다. 주4.5일제, 정년 연장,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재편은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 설계를 노동계가 선제적으로 고민하고 제안해야 한다. 노동자는 더 이상 변화에 저항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산별노조의 역할 또한 진화해야 한다. 보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조합원의 임금, 직무, 안전, 업무 강도 등을 동종 업종과 비교·분석해야 하며, 그 결과를 객관적이고 신뢰도 높은 자료로 제시해야 한다. 노조가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교섭 의제를 제시할 때, 사용자도 정부도 국민도 그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노조의 정치적 방향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은 특정 정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와 선언적 정치 방침으로 인해 조합원 내부의 정치적 냉소와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다양한 진보의 스펙트럼을 포용하지 못한 채 배타적 노선을 고수하면서 내부 결속보다 외부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식의 정서적 호소는 더 이상 조합원을 움직이지 못한다. 이제 노조는 조합원 스스로가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투쟁’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국민의 공감을 얻는 투쟁,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정책, 기술 변화에 맞서는 대안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공감 없는 노동은 고립되고, 공감 없는 진보는 설 자리를 잃는다.
공감으로 연대 투쟁하고, 전략으로 응답할 때 노동과 진보는 더 이상 뒤처지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