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정아 비장애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큰 아이와 같은 학교를 보낼지, 아니면 다른 학교를 보낼지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만약 두 아이의 학교를 달리 하려면 큰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고, 둘째를 집 앞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잘 적응하고 있는 큰 아이를 다른 곳으로 전학시키자니 아이에게도 필자에게도 번거롭기만 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다닐 수 있는 집 앞 학교를 두고 둘째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엔 두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입학식 다음날, 두 아이가 처음으로 함께 학교에 가는 날이다. 늘 혼자 등교하던 첫째는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들락날락하며 기다리고 있다. 둘째는 엄마랑 오빠랑 다 같이 학교에 간다며 신이 났다. 장애 오빠로 인해 학교에서 놀림을 받을까봐 걱정스러운 엄마의 마음은 전혀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분주하게 아이 둘을 데리고 교문에 이르렀다. 첫째는 작은 목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한 마디를 하더니 어슬렁어슬렁 교문으로 들어가 버린다. 둘째는 엄마를 한 번 안아주고, 큰 소리로 “잘 다녀올게~” 하더니, “오빠, 나도 같이 가야지!” 하며 뛰어가서는 오빠 손
이웃의 이야기 ‘모두 다 꽃이야’/제42화 카톡 친구가 생기다 필자 김정아 “카톡!” 주말 오후, 가족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아들의 핸드폰이 울렸다. 가족 외에는 연락하는 사람이 없어, 가족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울릴 일이 없던 핸드폰이다. “카톡, 카톡!” 또 다시 울린다. 핸드폰이 옆에 있지만 아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야, 카톡 왔는데. 확인 해 봐야지~” “네~ 확인해 볼게요.” 그제서야 아들은 핸드폰을 들고 카톡의 주인공을 확인한다. “엄마, ○○형이에요. ○○형은 지금 아빠랑 농구 보러 간대요!” “그래? 그럼 너도 대답해 줘야지.” “네. 잘 갔다 오라고 할게요.” 핸드폰을 쥔 아들의 손가락이 바쁘다. 무언가를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하는걸 보니 오타가 나서 열심히 수정하는 것 같다. “다 보냈어요~”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대화 상대가 다시 답장을 보낼 수도 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나 보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가장 큰 특징은 상호작용의 미숙함이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데, 다 듣고 있으면서도 즉각적이고 적절하게 반응하기를 어려워한다. 아들도 다른 사람의 부름에 5
“함께”여서 행복한 시간들 “시간 되는 사람은 이번주 금요일에 애들 재워놓고 모여서 맥주나 한 잔 할까?” “오케이, 콜!” 이런 대화를 서슴없이 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중에 아이들 학교 보내랴, 치료실 다니랴, 또 열심히 놀이다 공부다 시키며 엄마로서 노력한 나에게 주는 일종의 상이었다. 물론 만남의 상대는 대부분 우리 <모두 다 꽃이야> 멤버들이었다. 아이와 어떤 실랑이를 했는지, 아이로 인한 가족 외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상황이나 아이의 성장해가는 모습 등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비장애 엄마들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말 그대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장애인복지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부모님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유독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괜히 더 밝은 척 이야기를 건네거나, 일부러 농담을 섞어 상대방을 웃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솟아나기도 한다. “진짜 너무 밝으세요. 장애 아이가 있다고는 생각을 못 하겠어요.”
지난 5월, 안산의 한 골목길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던 발달장애인 고 모씨가 경찰에 의해 체포된 일이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고 씨의 혼잣말을 성(性)적인 발언으로 잘못 알아듣고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협박죄로 이 청년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경찰은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않는 고 씨를 외국인이라 생각해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 뒤로 수갑을 채운 채 경찰서로 데려갔다. 하지만 가족들은 고 씨의 행동이 발달장애인의 대표적인 불안 행동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외국인이라 오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만약 외국인이면, 이렇게 강제로 체포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건 외국인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 아닌가?) 또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고 씨가 부모나 신뢰관계인 등의 조력을 전혀 받지 못해,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와 비슷한 일이 필자의 아버지에게도 있었다. 지적장애인이었던 아버지는 동네의 폐지 모으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곤 하셨다. 몇 년 전,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어느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일이 있느냐며 물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가게에서 길
[참좋은뉴스= 김정아 컬럼리스트] 아이들이 근처 외할머니 댁에서 자고 오는 금요일 밤이다. 때를 놓친 저녁식사 대신 남편과 맥주 한 잔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연히 TV를 틀었다가, 한참 이슈가 되었던 아파트단지 내 택배차량 출입 문제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통합배송시스템’이라는 것이 유력시된다는 보도였다. 통합배송시스템이란 택배기사들이 단지 내 지정 장소까지 배송을 하면, 여기서부터 집 앞까지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배송을 해 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구직 취약 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점에서도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 아들의 치료 상담 중에 아들의 성인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터라, 이런 보도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처음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 부부의 가장 큰 걱정은 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발달장애에 대한 지식이 없고, 아이의 잠재력을 확인할 길도 없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고등학교 졸업 후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리고 특정 영역에서는 자신만의 강점을
이웃의 이야기 ‘모두 다 꽃이야’/제32화 친정 엄마 김정아 지난 2월, 필자의 ‘엄마’는 그동안 하던 일에서 물러나셨다. 자식들에게 부담되기 싫어 다른 일들을 알아보시는데, 필자는 ‘이제 다른 사람 말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힘든 엄마 딸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손을 벌렸다. 그렇게 해서 3월부터 엄마는 이제 외손자와 함께 낮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장애인용 콜택시를 잘 이용할 수 있을지, 학교 온라인 수업을 잘 들어갈 수 있을지, 손자가 공부하기 싫다고 하거나 치료실에 가기 싫다고 떼쓰며 힘들게 하면 감당할 수 있을지, 엄마와 아들의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한 달 반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 괜한 걱정들이었다. 할머니보다 컴퓨터를 잘 하는 아들은 혼자서 온라인 학습을 한다. 할머니는 공부시간과 쉬는 시간을 조절해주며 손자의 학습을 도와준다. 손자가 잘 챙기지 못하는 과제나 준비물 공지를 챙기고, 복지관이나 발달센터 치료에 동행한다. 친정 엄마와 아들을 복지관에서 본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아들이 엄마랑 왔을 때보다 할머니랑 왔을 때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할머니 옆에 얌전히 앉아 이야기하며 기다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새 학년, 새 학기가 되었다. 『참좋은뉴스』에 처음 글을 기고한 것이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그 무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덧 세 번째 맞는 새 학년이다. 새 학년... 우리 발달장애 엄마들에게는 가장 심적으로 힘든 시간이다. 새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특수학급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새로운 학년이 되어서 아이가 적응은 잘 할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이건만, 개학 전부터 밤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필자는 이번 개학도 역시나 걱정과 스트레스로 맞이했다. 3학년이 되니 등교 횟수가 주 1회로 줄었다. 2학년 때와는 달리, 거의 날마다 줌으로 실시간 수업이 진행된다. 그리고 e-학습터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 수업을 듣고 과제도 제출해야 한다. 대부분의 수업이 원격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아이 스스로 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인한 수업환경의 변화는 필자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였다. 그렇게 개학 1주일이 지났다. 학교를 한 번 다녀오고, 3번의 원격수업을 해 보았다. 원격수업을 옆에서 계속 지켜볼 수 없는 상황이라, 첫날 수업을 함께 하며 방법을 알려주고 연습을 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알아서 사이트에 접속해 동영상을 찾아 듣는다. 출석
해가 바뀌었어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는 여전하다. 이제는 코로나 퇴치나 극복보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외치며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 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들었지만,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은 특히나 더했다. 작년 말,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로 10대 발달장애인 한 명이 숨졌다. 당시 엄마는 잠시 외출을 했고, 혼자 집에 있던 아들이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아들은 베란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마 뜨거운 불길을 피해 가장 시원한 곳으로 몸을 피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집은 아파트 1층이었다. 만약 장애가 없는 아이였다면,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리지 않았을까? 장애의 유무가 아이의 생사를 가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필자에게도 있었다. 어느 날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탄내가 났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냄새인가 싶어 뒤를 돌았는데, 온 집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연기는 아이들이 노는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가보니, 당시 8살이던 아들과 5살짜리 딸이 연기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춘삼월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놀이터⋅공원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려 해도 주저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일상의 변화는 불편함을 넘어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인지,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이 모두에게 똑같이 미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특히 시설에서 집단감염된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자가격리가 되어도 홀로 생활하기가 어려운데, 시설이나 가족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활동지원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과연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염병은 장애인에게 또 하나의 생존싸움을 요구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상황은 일상의 장애아동들도 마찬가지이다. 안산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관내의 모든 복지관이 한 달째 휴관 중이다. 복지관은 장애 아동을 포함한 지역의 장애인들이 가장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재활시설이다. 장애아동들이 많이 다니는 사설 발달센터도 상당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