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좋은뉴스= 김정아 컬럼리스트]
아이들이 근처 외할머니 댁에서 자고 오는 금요일 밤이다.
때를 놓친 저녁식사 대신 남편과 맥주 한 잔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연히 TV를 틀었다가, 한참 이슈가 되었던 아파트단지 내 택배차량 출입 문제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통합배송시스템’이라는 것이 유력시된다는 보도였다. 통합배송시스템이란 택배기사들이 단지 내 지정 장소까지 배송을 하면, 여기서부터 집 앞까지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배송을 해 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구직 취약 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점에서도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 아들의 치료 상담 중에 아들의 성인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터라, 이런 보도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처음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 부부의 가장 큰 걱정은 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발달장애에 대한 지식이 없고, 아이의 잠재력을 확인할 길도 없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고등학교 졸업 후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리고 특정 영역에서는 자신만의 강점을 드러내기도 하는 아이를 보면서 조금은 밝은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진로나 직업에 대한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과거 발달장애인들이 많이 하던 일 중 하나가 보호작업장에서의 단순 노동이었다. 보호작업장이란 것을 처음 알고 이것을 아들의 미래 직장으로 생각했을 때, ‘어린 자식에게 그려볼 수 있는 미래가 기껏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않는 곳인가?’ 하며 우울했던 적도 있었다. 남들은 대통령, 과학자, 우주인 같은 것을 꿈꿀 때, 꿈조차 내 맘대로 꿀 수 없다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발달장애인의 직업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바리스타나 마트 상품 정리, 퀵/택배 서비스, 최근에는 요양보호사와 같은 돌봄서비스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증가하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나 무인 편의점에 상품을 채워 넣는 것도 발달장애인에게는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이 대면 서비스에 서툰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발달장애인이 많아지면서 직업군이 다양해지는 것, 정부에서 발달장애인의 일자리에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 부모들이 장애 자녀의 직업을 위해 일찍부터 준비하는 것.. 이러한 변화들이 필자로서는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10살인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다시 필자의 아들 이야기를 해 보자면, 아들은 언젠가부터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캡슐커피를 내려서 가져다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그 후 핸드드립을 보더니 자기도 해 보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과일청을 만들어 놓으면 혼자서 에이드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이런 아들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외친다. ‘오! 바리스타 하나는 확보!!’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아들이 컴퓨터의 선을 뺐다 꽂았다 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꽂는다. TV 셋톱박스도 마찬가지이다. 셋톱박스의 AI와 대화하는데 너무 몰입하기에 몰래 선을 모두 뽑아놓았는데, 어느새 연결해놓고는 다시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얘가 인터넷 설치기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태블릿이나 컴퓨터를 좋아해서 곧잘 익히는 모습을 보며 또 생각한다. ‘얘는 공대가 적성인가?’
실현이 될지 말지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희망사항이다. 침소봉대하는 엄마의 허황된 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5년 전에 비하면 아주 행복하다. 적어도 아들의 다양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아이가 성장하고 우리 사회가 계속 변화한다면, 5년, 10년 후에는 더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아들과 우리 가족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지금이다.
‘모두 다 꽃이야’는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꽃이 어디에서 어떻게 피어도 모두 다 꽃이듯, 우리 아이들과 엄마들도 모두 하나하나의 소중한 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