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탁·반공 순국 학생 추모위령제, 보라매공원서 열려
지난 9월 28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소재 보라매 공원 남쪽 연못가에 나란히 설치된 ‘반탁반공 순국 학생 충혼탑’(反託 反共 殉國 學生 忠魂塔)과 ‘한국 학생 건국 운동 공적비’(韓國學 生 建國 運動 功績碑)에서 사) 대한민국건국운동자유족회(회장 양금선)는 철저한 코로나 19 방역을 실시하고 ‘순국 전몰학생 합동 추모제’를 개최하였다.
이날 참석한 단체는 대한민국건국 운동중앙협의회 회원들 약 30여 명(코로나 19 재난으로 소수의 인원)이 모여 지난날 암울했던 우리나라를 위해 힘겹게 싸우다 산화한 청년들의 넋을 기리었다.
양금선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요즘 코로나 19의 재난으로 나라 안팎이 어지러운 때를 맞아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추모위령제에 참석해 주신 동지 그리고 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로 3.1만세 운동이 101주년입니다. 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로 1948년 8월 15일 정부 선포식을 거행한 기간 투쟁 한 분들과 임정 요인이 중심이 되어 반탁 투쟁한 단체 즉 서청, 학련 등의 투쟁으로 자주, 독립 민주 통일국가 건설을 기치로 하여 한반도의 38선을 기준으로 미군과 소련군의 신탁통치에 반대하여 투쟁하다 순국한 청년 학생 전국학생 총 연맹원 학생들로 건국 운동에 참여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학생들이 1950년 6.25를 기하여 북괴의 남침으로 국가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하자. 학생의 신분으로 자진 참전하여 산화한 1,140位 순국 학생들을 학생 총연맹위원장이요. 학도의용군 창설자이신 소석 이철승 선생과 그들의 동지요 전우들 및 1989년 당시 자체금 5억. 사회단체 후원금 5억 총합계금 10억여 원으로 현 보라매 공원에 학생 충혼탑을 건립하게 된 것입니다. 건국 당시에는 서북청년회(월남한 반공주의 청년단체)와 전국학련은 반탁, 반공의 최일선에 전위부대로 활약하여 연합국에 신탁되는 위기에서 또한, 세계 공산화 일환으로 모스크바 위성국에 편입될 위기에서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국하게 된 위대한 영웅들의 충혼탑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충혼탑과 공적비는 (사)한국반탁반공 학생운동기념사업회가 설립한 조형물이다. 충혼탑은 광복 44주년을 맞는 1989년 8월 15일에 세워졌고, 공적비는 2004년 11월 19일에 건립됐다. 두 기념비는 모두 해방정국에서 대표적인 우익 학생단체였던 전국학생총연맹(학련)과 그 위원장을 맡았던 이철승(1922~2016)과 깊은 연관이 있다. 두 조형물을 설치할 당시 기념사업회의 회장도 이철승이었다. 이철승은 해방 정국에서 김성수 등의 자금지원을 받아 대한 민주 청년 총동맹의 유진산과 더불어 반탁반공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충혼탑과 공적비 앞에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서로 접근법이 달랐던 김구와 이승만의 휘호가 함께 있는 보라매공원의 충혼탑과 공적비는 민족진영 내부의 상황마저 정확히 보여주지 못하는 조형물이다. 충혼탑과 공적비는 해방정국의 반탁과 한국전쟁 당시 반공을 위해 목숨 바친 청년 학생들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건립됐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반탁반공 운동을 1919년의 3·1운동에 이은 제2의 독립운동'으로 보는 충혼탑과 공적비의 시각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신과 헌법정신에 맞춰 바로잡는 일일 것이다. 실제 6·25동란 당시 학도병은 1951년 4월 기준 275,200명 (이선근 당시 정훈 국장 저서 건국이념과 학생)이 참전하였다.'고 한다.
반탁반공 순국 학생 충혼탑 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국과 민족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유와 민족주의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꽃다운 젊음이 여기 있다. 1945년 연합국이 일제로부터 한국의 해방을 돕는가 싶더니 38선을 그어 강토를 두 동강이 내고는 마침내 자치능력이 없음을 들어 신탁통치를 후견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였을 때 조국의 젊은 지성들은 전국 도처에서 분연히 일어나 신탁통치 반대의 열화와 같은 결의를 내외에 선포하고 싸웠다. 이것이 곧 반탁운동이었으니 3·1항일 운동에 이은 제2의 독립운동이었다. 신탁을 받아들여 이 나라를 외세의 멍에 아래 두려던 공산도배들의 흉계를 반탁으로 분쇄하고 민족사의 전통을 바로잡아 나라를 세운 뒤 1950년 김일성 집단의 6·25남침으로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민족적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 백만 학도들은 궐기하여 붓 대신 총검을 잡고 나아가 싸워 국토와 민족,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를 끝까지 목숨으로 지켰다. (생략)”
반탁반공 건국 학생공적비 전면에는 이승만의 ‘남북통일(南北統一)’, 뒷면에는 김구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휘호가 새겨져 있다.
최영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