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좋은뉴스= 김태형 기자]
<데스크 컬럼>
“행복한 가정이 미래입니다”
행·가·미 전도사 서재필 목사
김태형 기자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다.
저승에 가보니 정주영 회장이 마중 나왔다.
“여보게 돈 5천 원만 꿔주게나?”
그러자 이건희 회장이 대답했다.
“돈 한 푼도 없는데요.”
그때 정주영 회장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도 빈손으로 왔는가? 나도 빈손으로 왔다네!”
누가 썼는지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글이다. 듣고 웃지만 여운이 깊게 남는다. 현대사에서 두 인물의 자리는 매우 비중이 크다. 대한민국 경제를 이끈 1·2세대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주역들의 공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림자 또한 짙게 드리우고 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부를 축적하는 시대로 넘어 오며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 갔다.
그러나 시작은 같아도 꿈이 다른 인물 또한 우리 주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서재필 목사 또한 그런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949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봉동초등학교 졸업 후 돈이 없어 1966년, 15세 나이로 상경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효를 다하려는 마음에서 그는 상경 자금 140원을 마련해 구두닦이, 우산장수, 건어물 행상 등으로 삶의 기반을 마련했다. 약수시장 옥상에서 가마니를 덮고 자는 그런 극한 삶 속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효(孝)’와 성공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의(義)’를 위한 삶은 전 생애를 관통하는 긴 여정 속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머물던 집 중심에는 ‘착하게 살자’는 글이 그의 신념을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가 상경할 당시 서울은 소매치기가 들끓었다. 그 패거리들은 한패가 되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신념을 품게 되었다. 옥수친목회를 만들고 세운청소년 선도회를 결성해 종로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인상 깊은 활동을 했다. 선도 활동에 중심이 된 세운 헬스클럽을 운영하며 관훈을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로 사회 정화와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다’로 정하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79년 5월 21일 퇴계로 ‘행복예식장’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하지만 배필은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하던 수재였다. 중매로 만나 3시간의 대화 후 부인은 그의 신념과 살아온 삶을 인정했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몄어도 가훈에서의 그의 신념은 그대로 녹아나 있었다.
‘정의와 봉사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인내와 성실로 항상 가정에 웃음꽃을 피우자’
그의 선도 활동은 찬사도 따랐지만 많은 적으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비극도 잇따랐다.
당시 서울은 경제성장의 살아 있는 상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온갖 욕망을 품은 씨앗이기도 했다. 현대사에 한 페이지를 어지럽힌 악한들이 그와 맞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타협은 없었고 신념은 신앙이 되어 의지만 다질 뿐이다. 그렇게 돌아온 것은 좌절과 자녀를 잃은 슬픔이었다.
악한 생각은 끝이 없을 정도의 공격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무너졌다. 한때 선도의 신념은 살의(殺意)로 바뀌어 그의 최후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때 지혜로운 부인의 판단이 그를 살렸다. 준비해둔 무기를 감추고 남편의 뜻을 막은 것이다. 이마저 좌절된 그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쓰러지고 고열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병마에 무릎을 꿇을 찰나, 어느 목사의 안수로 기회를 찾은 후 체육관 관장에서 목사로의 전환을 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선교를 시작한 동서남북교회의 표어에도 초지일관했다.
‘가정을 치유하는 교회’
오늘도 그는 노구를 이끌고 전국을 누빈다.
국민권익위원회 소관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감찰위원장, 사)안중근의사문화예술연합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강연에 힘쓰고 있다. 유명세도 톡톡히 치뤘다. KBS 인간극장 - ‘덴마크에서 온 산타클로스’(2016년 12월 19일~12월 23일 07:50 KBS 1TV)와 LG U+ ‘딸바보 아저씨의 가족무한사랑 이야기’ 등에 출연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도 됐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신념이 결코 공허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서 목사는 번화한 서울을 떠나 한적한 영월 별마루 천문대가 보이는 산마루에 내려가 잠깐씩 머문다. 70대 중반을 치닫는 그에게 있어서 아직도 청소년 선도는 끝나지 않은 여정 중에 있다. 공자는 나이 70대를 종심(從心)이라 칭했다.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순리’가 존재하며 뜻을 품고 한 생을 살아온 이들에겐 이런 ‘순리’가 엿보인다.
출처: 유튜브 [LG U+] 딸바보 아저씨의 가족무한사랑 이야기
그는 청소년 선도의 ‘순리’는 가정 안에서 찾는다.
“행복한 가정이 미래다(행·가·미)”라고 주장한다.
행·가·미 전도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행복한 가정으로의 회복만이 지금의 많은 사회 부조리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전북 완주를 10대 때 떠나 파란만장한 시기를 서울에서 보내고 ‘종심’의 나이에 영월에 머물며, 별을 보며 ‘성공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약속을 ‘행·가·미’에서 싹을 틔우려 장고에 들어갔다. 그의 뜻이 일생에서 보여준 그대로 ‘행·가·미’에 대한 뜻도 창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 유튜브 KBS 인간극장 - 덴마크에서 온 산타클로스(장소: 서강 감리교회)
궁핍으로 꿈을 가질 수도, 실현할 수도 없었던 암울한 시기를 우리는 잘 이겨냈다.
또한 풍요로움으로 인해 꿈도 갖지 않고, 도전도 하지 않으려는 졸렬한 세태도 잘 이겨낼 것이다.
별이 있어 옛 사람들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앞이 암담할 때 우리 곁에 별이 되어 빛을 발하는 이들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