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스러운 삶과 따스한 가족애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젊은 부부는 캘리포니아에서 10년 살다가 다시 또 새 삶을 시작해 보겠다고 농업지역인 아칸소로 이주한다. 드넓은 초지와 허름한 트레일러 집은 이들이 살아갈 터전이다. 맘고생 몸 고생은 안 봐도 뻔하다.
남편은 빅 가든 청사진을 그리며 부푼 기대감으로 아칸소에 정착한다. 중고 농기계를 구입하여 직접 우물도 파고 밭갈이도 하며 농작물을 심기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있다. 아내는 병원도 멀고 마트도 멀어 생활하기에 불편하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며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자고 종용한다. 영농에 대한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는 남편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갈 가장이 밑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물론 야망과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고통 받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보편적인 삶은 아니다. 식수도 안 나오고 가끔은 정전되는 낙후 된 지역이다. 일자리는 병아리 부화장뿐이다. 그나마도 두 아이 돌볼 사람이 없어 이역만리에 계신 친정엄마를 부르게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부부싸움은 잦기 마련이다. 사람이 화나면 후회할 말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인성이 갖춰진 자들이었다. 부부의 다툼은 고성은 오고 가도 헤어지자, 이혼하자, 극단적인 말들은 하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워도 아내는 아픈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친정엄마한테도 이 현실이 다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며 살아간다. 친정엄마는 그런 딸에게 괜찮다, 다 괜찮아, 라며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한다.
친정엄마가 한국에서 가져간 미나리 씨앗이 어려운 이 가정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러운 물을 정화 시키는 미나리는 사람을 살리는 위대한 식수가 되기도 했다. 더 의아한 사실은 할머니는 본인의 귀중품 화투를 손자에게 선물한다. 할머니 같지 않다고 무시하는 손자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순간 나는 궁금해졌다. 할머니와 손자의 화투 치는 장면을 보면서 외국인들은 어떤 반응일까. 카드보다 화투놀이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뉴스에서 수컷동물의 존재성에 대해 보도했다. 수컷 가축들을 거세하는 장면과 수컷 병아리들이 태어나자마자 처참하게 죽는 모습이었다. 공교롭게 미나리 영화에서도 수컷 병아리를 화장시키는 부화장이 나온다. 연기가 나는 굴뚝을 바라보며 어린 아들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저게 뭐야”
“수컷 병아리들을 폐기 처분하는 거란다.”
“폐기가 뭔데?”
아빠는 아들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며 엉뚱한 대답을 한다.
“아들아, 우리는 폐기처분 되지 않게 열심히 살자,”
어느 날 중풍에 걸려 자유롭지 못한 친정엄마는 딸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소각하다 그만 트레일러 집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친정엄마는 무사했다. 망연자실한 가족들은 “우리 모두 함께하면 다시 뿌리내리며 일어설 것이야”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미나리는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휴먼 다큐멘터리 같은 이 영화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세상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어디에서나 적응하며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삶을 잘 표현했다.